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로써 인사 드립니다.
독일에 이민 온 지 만 3년이 지나고 햇수로 4년차네요. 입독 후 1년이 되던 날 '독일살이 1년' 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매년 같은 날 그때의 생각과 또 지나온 1년을 어떻게 느꼈는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요. 작년에는 3번째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코로나 때문이죠. 요즘은 뭐든지 '코로나 때문'인 시대잖아요? ㅎㅎ 아닌게 아니라, 저에게 2020년은 잊지 못할 한 해인 동시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해 였습니다. 3년째 되던 날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몇가지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있었고, 코로나 상황이 엄중하던 5월 초에는 막내 아이가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정체되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1년전 그대로였죠. 저희 가족의 모습도, 삶도, 생각도, 그리고 저의 독일어 실력도...읔. 그래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살이 4년' 도 아니고 3년 4개월이란 애매한 제목으로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시 코로나 때문이겠죠? ㅎㅎㅎ 사실은 뜬금없이 책을 하나 소개 드리려고 합니다. 김미경의 '리부트(REBOOT)' 라는 책인데요, 사실 제가 책을 많이 못읽어서 다른 분들에게 책을 소개한다는 것은 저 스스로도 굉장히 낯선 일입니다.
희망찬 2021년 새해를 맞이하며 다들 새해 계획도 많이 세우셨을테고 올해는 꼭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실 겁니다. 저 또한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 중 하나로 시작한 게 독서 입니다. 독일에 온 이후 종이책을 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난 ebook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야' 라는 스스로에 대한 편견으로 더욱 독서를 게을리 했었습니다. 그렇게 독서를 결심하고 만난 첫 책이 바로 이 REBOOT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리부트(Reboot)라는 단어에서 유추하듯이 코로나 이후 시대에 어떻게 재시작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계발서 입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 미래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코로나가 종식이 되어도 코로나 이전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라는 큰 틀에서 상당히 좋은 내용이 많고, 무엇보다 어렵지 않게 술술 잘 읽혀져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에요.
2020년말 즈음이 되면서 부터는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지쳐가셨고, 상황은 오히려 악화 되어가고 희망은 자꾸 줄어들고 있었죠. 저와 제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저는 무언가 그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같은 해에만 벌써 2번째 구조조정을 하고, 근로시간을 줄이고 월급이 줄어들었습니다. 락다운으로 인한 경제 불황, 실업, 양극화, 자영업자 폐업 등등 온통 안좋은 소식들만 가득한데 부동산 가격과 주식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죠.
어쩌면 단지 '정체'되어 있던 저의 상황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더 힘든 상황을 겪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일로 이민을 결정하시는 많은 분들의 이유 중 하나인 고용안정 측면에서 고용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저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가지 사회적 안전 장치들이 있긴 하지만 만에 하나 실업이라는 사건이 기반도 없고 독일어도 못하는 저같은 외국인에게 발생하게 된다면... 정말 힘들 수도 있겠구나. 오르는 집값, 주가지수, 비트코인만 봐도 해당 사항이 없는 저에겐 그 자체로 뒤쳐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이런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쉽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뭔가가 뭔지 뭔가를 하긴 해야할 것 같은데 뭘 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속에 맴돌기만 했죠. 그러던 중 새해 목표가 작심삼일이 되기 전,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인 BC와 이후인 AC로 구분한다는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머리속이 띵 했습니다. 그저 귓등으로만 흘려 들었던 익숙한 그 말들이 이제 다르게 보였습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상을 구분하는 것이 기원전과 기원후를 가르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책의 서두에서 이런 충격을 받고 읽어 내려가는 이후의 내용들에서 정말로 세상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한번쯤은 신문 기사에서 지나쳤을 만한 내용들인데 그동안 너무 관심이 없었던 거에요. 안그래도 독일에서 안(못)보고 안(못)듣고 사는 중인데.. 누군가는 위기감을 느끼고 이렇게 열심히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쌓인 채 막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바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코로나 이전 세상은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못했던 거에요. 코로나가 언제 종식이 될 지 모르지만 올해 안에 종식이 된다 해도 이미 세상은 변했고 절대 이전과 같은 세상은 아닐겁니다. 즉, 코로나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자, 이제 다시 시작하자!" 하는 순간, 그 출발선에서 이미 도태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너무 우울한 일일 겁니다.
김미경 작가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모두 '추격자' 라는 거에요. 이 세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만들어 내는 것, 즉 최초는 단 하나입니다. 한 명의 사람이거나 하나의 기업이거나. 나머지 모두는 추격자 라는 사실입니다. 최초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추격하느냐가 관건 입니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되면, 아이들 겨울방학이 끝나면 락다운 조치가 완화될 줄 알았습니다. 모두의 바람과 달리 락다운은 연장되었고, 오늘 또 파싱 때까지 연장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변종 바이러스 때문에 더 강화된 하드 락다운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하지만, 백신이든 치료제든 올해 안에 코로나는 종식될 거라고 믿습니다. 우울감, 피로감, 스트레스, 불안감 떨쳐 버리시고 조금 더 활기찬 2021년을 계획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올해 9월에는 '코로나 였지만 잘 살았다' 라는 4주년 기념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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