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이 가을 냄새가 나는 날이면 처음 독일에 도착했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작년 오늘엔 '독일살이 1년' 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그 이후 1년은 아주 오랜 1년을 지내온 것 같은 느낌이네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일들이, 채 1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독일 이민 첫 해가 당장 먹고 살기 급급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1년이었다면, 그다음 1년은 이별의 연속이었습니다. 다 말할 순 없지만, 여러 종류의 이별, 그리고 그 이별을 비로소 몸과 마음으로 느낀 시간이었죠. 독일에서의 진짜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별 이야기를 해서 좀 우울한데, 한편으로는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요ㅎㅎ)
저희 집 독일어 에이스, 첫째는 이제 3학년이 되었습니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잘한다고 (조금) 소문난 큰 딸 덕에 엄마 아빠도 다른 독일 부모들과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둘째는 유치원 졸업하고 다음 주에 학교에 입학합니다. 어디서 그런 친화력이 생겼는지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한국어로 인사하게 만든 이 녀석은 학교도 잘 다닐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18개월 된 우리 막둥이, 한참 애교 부리며 이쁠 때죠 ㅎㅎㅎ 잘 먹고 잘 크고 있습니다.
날로 늘어가는 요리실력을 뽐내며 이제는 양식과 베이킹에도 손을 대고 있는 아내는 며칠 뒤에 있을 큰애 생일파티를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독일어도 배우고 있고, 저녁엔 줌바도 하면서 나름의 삶을 찾아가고 있어요. 10월에 막내까지 키타에 보내면 좀 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선 올해 텃밭농사가 잘 되어서 기쁩니다. 첫 해에는 뭣도 모르고 깻잎만 많이 키웠는데, 올해는 이것저것 시도해봤어요. 상추, 고추, 부추, 알타리무, 호박, 청경채, 미나리, 쑥갓 등등 그중에서 상추랑 고추가 너무 잘 되어서 상추는 정말 원 없이 먹었고요, 알싸한 청양고추는 그리운 한국 맛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뒤늦게 부추도 조금 자라서 요즘 흐린 날이면 부추전에 페더바이저 먹는 즐거움도 있고요.
나름 독일어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독학으로 4개월 공부해서 지난 5월에 B1 독일어 시험도 합격했답니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고, 가족들도 저희 집에 방문해서 지내다 가셨구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겨우 살 기반만 마련해 놓고서 '성공적인 이민'을 들먹이며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올해는 그럴 틈조차 없이 바쁘게 알차게 보낸 것 같습니다. 일상이 주는 안정감 이랄까요.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지요? 이제는 그렇게 새로운 이벤트가 많지 않아서 당황할 일도, 어려운 일도 많이 줄었습니다. 매일, 매달, 매년 반복되는 것들에 맞춰 계획을 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고 즐길 여유가 생겼습니다. 첫 해에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은 아마도 일상이 일상적이지 않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일교차 큰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항상 행복한 독일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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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유
Second Life in 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