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7년전이 되어버린, 2001년의 여름.
생각지도 못한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다.
계획이 틀어진 한 선배가 나에게 '같이 갈래?' 했고,
별 기대없이 물어본 나에게 부모님은 지원과 허락을 해주셨다.
사실 그 선배랑은 둘이 여행을 같이 갈만큼 친하진 않았었고,
2001년 당시 한달 유럽여행 경비를 다 대주며 보내줄 가정형편은 더더욱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나와 유럽의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거창하게 인연이랄 것도 없지만, 어쨋든 유럽에 대한 나의 관심의 시작이었다.
중부유럽 9개국,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체코-독일-벨기에-네덜란드-영국 의 순서로 약 4주 정도의 여행이었던 것 같다.
도착 첫 날부터 프랑스에서 소매치기 당한 일, 스위스 넘어갈 때 기차예약을 못해서 하루 묵을 숙소를 찾아 밤길을 헤메던 일,
이탈리아에서 집시들에게 둘러쌓여 당황했던 일, 체코 프라하성 야경구경하다 차 끊겨 택시에서 바가지 쓴 일 등
(왜 힘든 기억이 먼저나는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잊혀져가는 단편의 기억들 속에서도 나는 언제나 스위스와 독일이 가장 좋았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독일에 살고 있다.
2006년말, 졸업을 앞둔 나는 부족한 토익점수와 반복되는 면접 탈락으로 취업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또다른 한 선배의 추천으로 유럽계 외국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다행히 합격을 하게 되었는데 계약직 이었다.
외국계회사 계약직과 대학원 진학,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난 계약직을 선택했고, 3개월 후 운좋게 정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1년 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신입은 혼자 노르웨이 출장을 가게 된다.
처음엔 2주였던 출장이, 3주.. 한달이 되었다.
별 x고생을 다하면서도 기억에 남는건, 노르웨이가 정말 좋았다는 것이다.
살인적인 물가와 동시에 그들의 여유와 긍정문화, 북유럽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첫 회사를 8년을 다니고 두번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회사가 한국 오피스를 close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등떠밀려 옮기게 된 두번째 회사 역시 유럽계 외국회사였는데,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핵심 R&D는 독일인 회사로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3년 동안 나는 늘 독일 출장을 바라곤 했다.
결국 기회가 왔고, 나는 같은 회사 독일지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무언가가 계속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아니면 16년전 막연히 좋은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몰라도,
나와 내 가족은 이곳 독일에서 두번째 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댓글,
세라유
Second Life in EU